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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통일신라 불교를 대중화 시킨 원효대사

by 채유니후니 2023. 5. 21.

법성종은 일체 만유는 같은 법성을 가졌고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불교 종파로, 삼론종, 화엄종, 진언종, 천태조 등 대부분의 불교 종파의 교리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원효가 한국적인 불교로 시작하였으며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불교 종파를 형성했습니다.

경주 분황사를 근본도량으로 하고 분황종이고도 하며, 해동종, 중도종이라고도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개성 왕륜사를 본사로 했으며 조선 초까지 존립하였으나 불교 종단으로 크게 번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원효(617 ~ 586년)는 의상대사와 함께 한국 불교를 이끈 대표적인 승려로 서당화상, 고선대사 등으로 불렸으며, 고려 숙종 때 대성화정국사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대체로 원효대사로 불립니다.

 

원효는 불경에 대해 통달했으며 국내 뿐 아니라 당나라 고승들도 그를 매우 존경했다고 합니다. 불교를 대중화시키고 삼국통일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서당화상비-사진
서당화상비

원효대사를 기르는 비석 서당화상비

서당화상비는 경주 고선사 절터에서 출토된 원효대사를 기르는 비석입니다. 9세기초 원효대사의 손자 설중업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비문은 33줄이며 한 줄에 61개의 글자가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용은 '십문화쟁론'을 비롯한 대표적인 저술서의 성격, 수학과정과 행적, 입적한 장소와 시기, 비석의 건립과 추모사업 등을 담고 있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사찰 경주 분황사(芬皇寺)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 중 하나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30호)과 솔거가 그렸던 관음보살상 벽화, 웅장한 약사여래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머물면서 불법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법성종 근본도량으로 여겨졌으며, 중문, 석탑, 3 금당, 강당, 회랑을 갖춘 큰 사찰이었습니다.

그러나 몽골의 침입과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각 대부분은 소실되었습니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모전석탑을 비롯하여 원효대사비를 세웠던 화쟁국사비부, 당간지주, 석정 등이 남아 있습니다. 분황사는 삼국시대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겼던 숲에 세워졌던 칠처가람 중 하나입니다. 신라를 건국했던 6촌장 중 고야촌(명활산) 설 씨와 연관된 것으로 보입니다.

 

원효대사의 속성은 설씨이며, 한국 유학의 시조로 여겨지는 설총이 그의 아들입니다. 분황사 절터에 남아 있는 모전석탑(국보 30호)은 신라 선덕여왕 때 세워졌으며, 자연석을 쌓은 기단 위에 1층 탑신을 크게 쌓고 그 위에 낮게 탑신을 쌓아 올렸습니다. 1층 몸돌에는 4면에 감실을 만들고 입구에 인왕상을 새겨 놓았습니다.

 

이 인왕상은 이 석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 조각상이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칩니다. 기단부 모서리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사자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석탑 수리과정에서 사리갖춤과 각종 공양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리는 비단에 싸여 은합 안에 있었으며, 이밖에도 여러 공양물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바늘, 가위, 집게 등은 분황사 창건을 발원했던 선덕여왕과 관련을 짓기도 합니다. 또한 석탑 안에는 북제 동전인 상평오수전과 북송 동전인 송녕중보가 같이 발견되어 고려시대에도 석탑을 해체, 수리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분황 사지 석탑 옆에는 원효대사를 위한 비석인 화쟁국사비 받침돌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 명종 때 원효대사를 위한 비석이나 시호가 없음을 애석하게 여긴 왕이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절 근처에서 발견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습니다.

원효대사가 머무르던 고선사(高仙寺)

고선사는 경주시 암곡동에 위치한 절로,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곳은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머무르던 곳이라고 합니다. 고선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기록에는 없지만, 발굴조사 결과 많은 문화재들이 출토되었습니다.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은 수몰되었으며, 절터에 있던 삼층석탑을 비롯한 많은 석조 유물들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전되었습니다.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38호)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놓은 전형적인 삼층석탑 형태를 하고 있으며, 높이는 10.2m입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3층 몸돌을 제외한 탑신 몸돌도 여러 개의 돌을 조합하여 만들었습니다. 3층 몸돌은 사리함을 넣어두는 목적으로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인 7세기에 만들어졌습니다.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

 

원효대사 깨달음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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