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처가람은 당시 귀족층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법흥왕이 그들이 신성시 여겨졌던 숲에 세웠던 혁명적인 조치였습니다. 특히, 박혁거세의 능이 있는 오릉 주변에 많았다는 것은 불교 공인을 반대한 세력을 박씨들이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칠처가람은 7, 8세기에 신봉되었으며, 불교 신앙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통일신라 때 세워진 불국사는 신라 불국토설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칠처가람 중 분황사, 영묘사, 사천왕사, 담엄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용궁 북쪽 분황사
분황사는 신라 시대에 세워진 사찰 중 하나로, 가장 오래된 모전석탑(국보 30호)과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벽화, 약사여래상 등이 있는 사찰입니다. 원효대사가 머무면서 불법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법성종 근본도량으로 여겨졌고, 중문, 석탑, 3 금당, 강당, 회랑 등이 있었던 큰 사찰이었습니다. 하지만 몽골의 침입과 임진왜란으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 현재는 모전석탑과 화쟁국사비 받침돌, 당간지주, 석정 등이 남아 있습니다.
분황사는 삼국시대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겼던 숲에 세워졌으며, 신라를 건국한 6촌장 중 하나인 고야촌(명활산) 설 씨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원효대사의 성은 설 씨이며, 그의 아들인 설총은 한국 유학의 시조로 여겨집니다. 분황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세워진 모전석탑(국보 30호)이 있습니다. 1층 몸돌에는 4면에 감실이 있고, 입구에는 인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기단부 모서리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사자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분황사 지석탑 옆에는 원효대사를 위한 비석인 화쟁국사비 받침돌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 명종 때 원효대사를 위한 비석이나 시호가 없음을 애석하게 여긴 왕이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이 비석은 추사 김정희가 절 근처에서 발견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통일신라 때 분황사 금당에는 거대한 약사여래상을 모셨다고 합니다. 현재는 보광전에는 조선후기에 조성한 금동약사여래 입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분황사
경주시 분황로 94-11 (구황동 312) 09:00~18:00(동절기 17시까지)
www.bunhwangsa.org
사천의 끝 영묘사
영묘사는 선덕왕 때 창건되었으며, 백제 복병이 여근곡에 있음을 감지한 일화로 유명한 사찰입니다. 양지스님의 작품이 많았던 이 곳에서는 금당에 모셔졌던 장륙삼존불, 천왕상과 목탑, 기와 등을 만들었으며, 출토된 기와 등에서는 화려한 조각수법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절터에서는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진 얼굴무늬수막새와 생동감 넘치는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도깨비 얼굴 모양의 기와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이 곳에 성덕대왕신종이 걸려 있었습니다. 도깨비기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도깨비문양이 새겨진 기와는 '신라의 미소'라 불리는 영묘사터에서 발견된 수막새와 함께 유명한 유물입니다. 양지스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기와는, 경덕왕이 부친 성덕왕의 명복을 기원하며 만들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아들인 혜공대(771년)에 완성되었으며 '성덕대왕 신종'이라 불렸습니다. 원래 성덕왕의 원찰이었던 봉덕사에 매달려 있었던 이 종은 절이 폐사되고 영묘사로 옮겨졌으며, 조선시대에는 경주읍성 남문 밖에서 성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려주는 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유림 사천왕사
사천왕사는 경주의 신성한 숲인 신유림에 세워진 사찰로, 건물이 없어지고 절터만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위해 명랑법사의 권유로 창건되었으며, 당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 사찰의 이름인 '사천왕'은 불교에서 수미산입구를 지키던 천왕들로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이 수미산임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천왕사는 쌍탑식 가람배치를 한 첫 번째 사찰로, 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중문지, 북쪽에는 강당지가 있습니다.
이 사찰에는 목탑터 2개가 있으며, 목탑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가구식기단을 사용했습니다. 이 목탑터에는 건물 구조에 맞게 주춧돌이 놓여 있고, 가운데에는 사리를 보관하는 심초석이 있습니다. 절터에서는 목탑 기단부를 장식하고 있던 녹유사천왕상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유물은 동시대에 활약한 조각가 양지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절터 입구에는 거북모양을 한 2개의 비석받침돌이 남아 있습니다. 이 비석받침돌은 태종무열왕릉에 남아 있는 거북받침돌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이 사찰은 주술적인 밀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찰입니다. 이는 이곳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찰은 삼국시대에는 문무왕을 위한 사찰로 사용되었으며, 문무왕 비(碑) 상단부는 최근에 경주의 주택 마당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이 사찰은 당나라의 침략과 통일신라시대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천왕사는 건물이 없어지고 절터만이 남아있는 곳이지만, 이곳에서는 주변의 숲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은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산책과 역사 탐방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귀중한 장소입니다.
서청전 담엄사
경주 오릉 남쪽에 위치한 담엄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으며, 박혁거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추정됩니다. 고려시대까지 중요한 사찰이었지만, 조선 시대에 폐사되었습니다. 담엄사가 있던 자리는 일제강점기에 도로를 개설하면서 없어졌으며, 석조 유물들은 경주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박혁거세를 모신 숭덕전이 세워졌고, 석재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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