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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정조가 고향처럼 여긴 수원화성

by 채유니후니 2023. 5. 13.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은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릉원(현재의 융릉)으로 옮기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화성행궁을 건립했습니다. 화성행궁은 화성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행궁 중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힙니다.

풍루(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정조가 수원화성을 고향처럼 여겼다는 뜻에서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의 '신풍'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수원화성-사진
수원화성

정조대완의 꿈이 담긴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조선시대에 건축된 성곽으로, 조선시대 개혁 군주인 정조대왕의 꿈을 담아 건축된 수원화성입니다. 우리나라 성곽 건축사상에서 가장 독보적인 면모를 자랑하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세계 기록 유산인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축조 상황을 바탕으로 1975년부터 복원하였고, 1997년에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정조대왕은 화성 축성 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면서 '불취무귀'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안내문에서는 아직도 그런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군왕으로서의 자책감과 미안함을 토로하였습니다.

수원화성은 약 5.7km의 길이로 성곽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수원화성의 멋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정조대왕의 효심과 애민정신이 담긴 숨결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거나, 정약용의 토목건축 백미를 감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걷기만 해도 눈부신 예술성과 아름다운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며, 어디서 시작하더라도 하나로 이어진 길 위에서 색다른 경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플라잉수원

플라잉수원은 수원화성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안전성이 뛰어난 계류식 헬륨기구입니다. 높이 32m, 폭 22m의 규모로 최대 30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하늘에서 아름다운 수원화성을 더욱 특별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창룡문은 수원화성의 동문입니다. "蒼(청)"은 푸른색을 가리키므로 '동쪽 방향 지키는 신령한 청룡'을 상징합니다. 한국전쟁 때 문루가 파괴되어 1976년에 복원하였습니다.

 

동북각루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입니다. 용두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군사 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습니다. 방화수류정이라는 별칭이 있으며, 각루 1층에는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만든 온돌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화수류정은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해 임금을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입니다.

북수문, 남수문

북수문(화홍문)/남수문은 수원천의 북쪽과 남쪽을 가로질러 세워진 2개의 수문으로, 특히 화홍문과 인근의 방화수류정과 용연은 수원화성에서 손꼽히는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합니다. 장안문에서 성곽돌기를 마무리하면 가장 인기있는 관광명소 중 하나인 행궁동 카페거리를 걸어 수원행궁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백성의 삶을 개선 시킨 정조의 업적

 

백성의 삶을 개선 시킨 정조의 업적

정조는 18세기 후반 조선시대의 임금으로, 참으로 모범적인 임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의 성격은 성실하고 반듯하여 유명했으며, 학식도 매우 높았습니다. 무예에도 소질이 있어 항상 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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