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년, 두 차례나 이어진 일본의 침입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과 조선의 승리로 인해 끝났지만, 조선은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이 쓸고 간 국토가 황폐화되어 백성들이 굶어 죽을 지경에 다다랐고, 소중한 문화 유산들이 불탔습니다.
백성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해 서로를 죽이고 인육을 섭취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외적으로도 임진왜란이 준 타격은 상당했습니다. 전쟁 당사자인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내전 끝에 에도 막부가 새로이 권력을 차지했고, 조선에서 잡아 간 백성들과 유물들을 이용해 문화 수준을 한층 더 높였습니다.
명나라는 조선에 원병을 보내느라 힘을 써 결국 쇠락 끝에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명나라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만주에서 여진족이 급부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전쟁이 끝난 후는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전쟁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책임이 있는 조선의 집권층은 전쟁 후에도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임금 선조가 나라를 지킨 의병장들을 불신하고 외면하는 상황에서 그 행동을 부추기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정에서 활약하며 백성들을 위해 온몸을 바친 명재상 이원익에 대해 알아봅니다.
조선 중기 정치가이자 문신 이원익
이원익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문신으로,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을 이끈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이원익의 성격은 온건하고 조용했으며, 실리를 중요시하고 실무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원익은 초신진인 이준경의 밑에서 배웠으며, 이후로도 줄곧 실리를 중요시하고 현실적인 정치적 주장을 펼쳤습니다.
1569년 문과를 급제한 뒤, 승문원에서 벼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황해도 도사로 율곡 이이를 상관으로 만나게 되었고, 이이는 이원익의 빠른 일처리를 높이 사서 그를 신임했습니다. 그의 신임을 통해 이원익은 동부승지, 우부승지 등 중앙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안주 목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에는 백성들에게 양곡을 풀어 구휼을 하거나 뽕나무를 심는 법을 전파하는 등 선정을 펼쳤기 때문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원익은 대사헌, 예조 판서, 이조 판서 등으로 승진하며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때, 이원익은 평안도 도순찰사 자격으로 일본군과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는 윤두수와 함께 평양성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일본군이 공격해 오자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는 추태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 행적을 씻기라도 하듯 정주에서 군사들을 모아 왜적을 토벌하거나 이여송의 명군과 합세해 평양성을 수복하는 등 여러 공적을 세웠습니다.
이원익은 마치 세종대왕 시절의 황희가 연상될 정도로 정승에 어울리는 인물이었습니다. 영의정 자리에만 5번이나 임명되었다는 놀라운 기록도 가지고 있는데, 그때마다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고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사실이 이런 기록을 만들어 준 듯 하다. 이원익은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지 3달밖에 되지 않은 1608년 5월, 조선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건의를 한다. 그가 건의한 것은 다름아닌 대동법이었습니다.
대동법
대동법은 조선 시대의 법률 중 하나입니다. 이법은 인조 때 강원도, 효종 때 충청도로 확대되기 전에는 경기도에서만 시행되었습니다. 이법은 공납제도에서 공물을 대신 구해주는 방납업자들의 악용과 그에 따라 백성들의 부담이 커지자, 이이가 대공수미법을 건의한 것을 계기로 이원익이 대동법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대동법은 지방별로 각각의 특산물을 바치는 세금인 공납제도를 대신해서, 대신 물품을 구해준다는 명목으로 높은 값을 받고 있던 방납업자들을 대상으로 공물을 무조건 쌀로 부과하는 법입니다. 이 법은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건의되었으며, 광해군이 찬성하면서 선혜청 설치와 함께 대동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권세가나 왕족들이 주도해 반대하게 되면서 대동법은 폐지되었으나, 이원익은 이 법을 확대하고 전국적으로 시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원익은 정치적인 업적을 남겨 조선 중기의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인물성과 대동법 주장 등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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