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칼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요 근거로 하여 일본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임나일본부설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 진실을 왜곡하는 몇몇 일본 사학자들의 주장 중 하나입니다. 이 주장은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의 백제, 신라, 가야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통치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인 증거가 부족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 또한 논리적으로 부적절합니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이 주장의 주요 근거로는 《일본서기》의 기록이나 광개토대왕릉비 명문, 그리고 칠지도에 쓰인 명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들은 사실적이지 않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주장은 일본 학계에서도 공식적으로 부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 역사 교과서에 내용이 실리거나 극우 학자들이 주장하는 등 임나일본부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왜곡을 막기 위해 우리는 한국 고대사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칠지도
한편, 칠지도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칼입니다. 현재 일본 나라현 덴리시의 이소노카미신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전체 길이는 74.9cm, 자루를 제외한 칼날 부분은 65cm이며 좌우 3개씩 총 6개의 가지 모양 칼날이 뻗어있어 칠지도라고 불립니다. 단철로 주조되었고 칼의 앞뒷면에는 금으로 된 60여 자의 명문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졌습니다.
칠지도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이 명문은 한국과 일본 양쪽 사학계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명문 내용 자체도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을 '백제 왕세자가 얻은 기묘하고 성스러운 소식'으로 풀이하거나 '왜왕 지'를 '왜왕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등 의견이 갈립니다.
그러나 명문의 서술체가 굉장히 단조롭고 형식적인 점을 감안해 지금은 확실한 의견이 좁혀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고, 잘못된 역사적 주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학습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칠지도 논란에 대한 4개의 주장
그렇다면 칠지도의 어떤 점이 그렇게 논란인 것일까? 바로 칠지도를 만들고 일본에게 준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대한 부분입니다. 이는 총 4개의 주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백제 왕이 왜왕에게 바쳤다는 설"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 중 하나이며, 백제의 왕이 왜왕에게 일종의 조공품으로 만들어 바쳤다는 주장입니다. 이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본서기》 <신공기> 52년조의 "백제의 구저 등이 천웅장언을 따라와 칠지도와 천자경, 그리고 여러 가지 보물들을 바쳤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들이민다. 하지만 《일본서기》의 기록이 일부 기사를 제외하면 지나치게 일본 중심적이고 당대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왜곡된 서술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학자들 사이에서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특히, <신공기>는 신화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라 사료로 쓰기에는 매우 부적합하기 때문에 이 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일부 분들은 중국 동진이 백제를 통해 일본에 하사했다는 설을 주장합니다. 이 설에 따르면, 동진의 연호 '태화 4년'을 앞면의 연도로 해석하고, 뒷면의 '성음' 부분을 '성진'으로 풀이합니다. 즉, 성스러운 진나라에서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설은 앞면에 쓰인 연호에 대해 논란이 많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습니다. 또한, 동진의 연호가 쓰였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동진이 하사했다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뒷면의 글귀 또한 성음으로 보는 의견이 많기 때문입니다.
- 한 설에 따르면, 백제와 일본은 상하 관계를 갖지 않고 동등한 관계에서 선물을 주고받았다고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제후국의 왕' 운운이나 '후세에 전하여 보아라'라는 어조와 어휘를 보면, 두 나라가 동등한 관계였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 한국의 사학계에서는 백제 왕이 일본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주장은 당시 국제 정세나 일본이 백제에게 받은 폭넓은 문화적, 기술적 영향을 고려할 때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칠지도'라는 이론은 일본이 백제보다 명백히 아래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발해 유물 중심으로 살펴보는 발해 문화
발해는 고구려의 후손인 대무신왕이 698년에 건국한 국가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연해주 일대에 위치했습니다. 발해는 중국과의 문화적 교류를 통해 발전했으며, 또한 일본과도 교류를 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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