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을 지나 계림을 거쳐가면 경주향교에 도착합니다. 경주향교는 전설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표적인 주인공인 경주 최부잣집, 즉 경주교동 최씨 가문의 고향입니다. 교동법주와 함께 교동한옥마을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전설을 담은 요석궁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삼국유사>에서 함께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스님 원효는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 하늘을 받칠 기둥을 다듬겠다"라고 말하며 다녔습니다. 태종무열왕은 그 뜻을 깨닫고 홀로 된 요석공주가 머물던 요석궁으로 원효를 유인합니다. 남산을 내려와 문천교(유교)를 건너던 원효는 물에 빠져 옷을 말리기 위해 요석궁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신라의 대학자 설총이 태어나게 됩니다.
설총의 부모
설총의 부모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이며, 그의 외할아버지는 신라 최초의 진골 출신 왕 태종무열왕입니다.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문천(남천)이었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요석궁은 지금의 경주향교 자리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총이 신문왕 시절 국학을 만들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본인 집을 국학 자리로 내놓았습니다. 신라 시대에는 국학, 고려 시대에는 향학,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향교가 되어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설총의 집, 즉 요석궁은 지금 향교 자리에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불국토 남산을 이어주는 월정교
원효대사가 건너던 다리는 월정교와 지대를 같이 썼던 문천교(유교)이며, 빠진 곳이 문천이었습니다. 경주시청 문화재과 역사마을관리팀의 이채경 전문학예사는 "천년 신라의 핵심은 월성이었다"며 왕족들이 머물렀던 월성과 신라의 불국토 남산 사이를 가르는 물길이 문천이라고 전했습니다.
월성은 신라의 대표적인 궁궐로, 왕족들의 거처였으며, 궁중의 문화와 예술, 정치의 중심지였습니다. 둘을 잇던 최고급 다리가 바로 월정교였으며,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9권 경덕왕 편에는 "문천 위에 월정교와 춘양교를 놓았다"는 기록이 있어 월정교가 신라 왕궁과 남산을 잇던 다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춘양교는 일정교로도 불리며, 달과 해처럼 맑고 따뜻한 아름다운 다리였습니다. 신라가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건설한 대규모 다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년간 신라 왕궁이 있던 월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만남을 통해 태종무열왕의 의지로 건립된 요석궁은 신라 왕실의 역사를 엿보는 보물입니다. 경주는 고대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도시로, 다양한 유적지와 문화재가 있습니다. 석빙고, 첨성대, 월지, 안압지 등의 유적은 신라 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며, 경주 향교는 조선시대의 향교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이 모든 유적들은 고대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있어, 국내외 관광객들이 함께 찾는 인기 있는 관광지입니다.
원효대사 깨달음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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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당나라로 유학 가던 길에 해골물 일화를 통해 득도한 신라의 승려. 속성은 설, 아명은 서당, 신당, 이름은 사례이며 원효는 출가한 뒤의 이름으로 의상과 함께 고구려의 고승으로서 보
1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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