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디 원나라의 소. 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에서 볼 수 있듯이, 장영실은 자신의 신분상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제약은 결국 그의 인생을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재능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장영실은 동래현 관노인으로 태어났지만 성품이 종교하고, 놀랄 만큼 뛰어난 공교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감독으로 제작된 왕의 가마가 부서져 불경죄로 파면당하면서,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영실의 업적과 재능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천재적인 두뇌와 놀라운 발명으로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장영실은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과학자
장영실은 조선 시대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기생 출신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높은 공교력으로 인해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천문학, 기계공학, 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그 시대의 많은 발명품과 기술적 창조성을 선보였습니다.
- 청동 인쇄술 갑인자
그 중 하나는 청동 인쇄술인 갑인자입니다. 당시 책을 만들려면 붓으로 한자 한자 베껴 써야 했던 시대에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아름답고 멋있는 필체로 똑같은 책들을 단번에 여러 벌 만들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 번 만든 활자를 써서 여러 종류의 책을 원하는 대로 인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천문과 기상관측
조선 시대와 같이 농업 국가에서는 천문과 기상 관측이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장영실은 수년간의 노력 끝에 완성한 천문 관측기에 대간의와 소간의를 비롯하여,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등을 탑재했습니다. 이들 정밀 관측 기계를 갖춘 경복궁의 간의대는 15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큰 천문 관측 시설 중 하나였습니다.
- 자동 물시계
그리고 자격루라는 자동 물시계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그는 세계 다른 물시계와는 조절 방식을 달리하여 새로운 시스템의 아날로그-디지털 변환 장치를 발명하여 새로운 기술적 창조성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자격루를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그 당시 쓰이던 모든 천문 의기를 하나로 종합한 것과도 같은 정밀 자동 시계 장치인 옥루를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 측우기의 발명
또한 장영실은 측우기를 발명하여 비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냈습니다. 몇 년 동안에 나라에 가뭄과 홍수로 농사를 망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세종의 제안으로 농사를 과학적으로 짓자면 비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영실은 끊임없는 연구 끝에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마당에 구덩이를 파이게 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측우기를 완성했습니다.
측우기는 조선 세종 23년(1441년)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명되었으며, 그 뒤 개량을 거쳐 세종 24년(1442년)에 측우기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측우기는 무쇠로 만든 깊이 42.5cm, 지름 17cm의 둥근 통 모양으로, 천문 관계 일을 맡은 관상감에 대를 만들고 그 위에 올려놓아 비가 그친 다음에 빗물의 깊이를 재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측우기는 이탈리아의 카스텔리가 만든 측우기보다 200년이나 앞서 만들어졌으며, 우리 나라의 자연조건을 통계적으로 파악하여 농업 생산에 이용하는 한편, 자연재해를 이겨내려고 애쓴 조선시대 과학자들의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장영실의 다양한 과학 기술 발명품은 그 시대의 한국 과학 기술 발전에 큰 역할을 했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업적은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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