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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대한민국을 위해 온몸을 바친 우장춘 박사

by 채유니후니 2023. 5. 11.

우장춘 박사는 일제와 6.25전쟁의 시대에 대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먹고 살만한 땅으로 바꿔놓은 구국의 위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출생부터가 기구했으며, 아버지가 친일부대의 대대장으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역적 우범선의 아들이었습니다. 우장춘은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으며, 가족의 비참한 역사 속에서 살아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장춘은 끈기와 열정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육종학계에서 최고 권위자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우장춘 박사는 대한민국을 위해 온몸을 바치신 영웅이셨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우장춘 박사의 미국 유학 경험과 일본어 구사 능력 등을 이유로 차별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우장춘 박사는 대한민국에서의 이상적인 과학자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우장춘 박사는 일본으로 출국할 수 없었고 어머니의 죽음과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장춘 박사는 끝까지 조국과 조선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우장춘-박사-사진
우장춘 박사

우장춘 박사의 어려운 삶

우장춘의 가족은 그야말로 최악의 삶을 살게 됩니다. 억울한 면도 있었을 역적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우범선은 우장춘의 나이 5살 때 대한제국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장춘 가족은 그야말로 떠돌이 집시만도 못한 최악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조선에선 배신자 역적의 가족, 일본에선 이용가치 없는 쓰레기 트기 가족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끈기와 열정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씨없는 수박을 가져옴

우장춘 박사가 "씨없는 수박"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씨없는 수박은 일본인 박사 '기하라 히토시' 이 만들었고, 이것을 우장춘 박사가 한국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씨없는 수박은 당시 한국의 수박 산업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씨없는 수박은 수박 시장에서 수확기간이 늘어나, 수확량이 증가하며, 수박의 품질이 향상되어 수박 생산자들의 수입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우장춘 박사의 엄청난 업적

우장춘 박사는 일제시대 조선의 농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연구주제는 씨없는 수박 뿐만 아니라, 쌀과 콩 등 다양한 작물에 대한 실험적 연구였습니다. 우장춘이 개량한 우량 종자들은 해외에서 가져온 것보다도 훨씬 더 탁월한 품질을 자랑했습니다.

우장춘의 창조적인 재배 기술과 우수한 종자를 통해 제주 감귤 산업이 성장하게 되었으며, 강원도민들의 굶주림을 막기 위해 취약한 감자 종자를 강력한 작물로 변형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또한, 페튜니아를 화초로 가꿔 원예 산업을 발전시키는 등 우장춘은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 일본에서도 깜짝 놀랐던 인물입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장춘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많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으며, 그는 육종학계에서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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