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은 공주시의 대표적인 유산 중 하나입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를 지켜왔던 역사적인 성으로, 현재는 공주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입니다. 이 곳을 방문하면 성벽길을 따라 걷으면서 산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성벽에서는 공주시가지와 백제 왕릉군인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공산성의 북문, 공산성 공북루
공북루는 공산성 북문에 위치한 문루입니다. 선조 36년(1603년)에 옛 망북루의 터에 신축되었으며, 조선시대 문루 건축의 대표적인 예로 꼽힙니다. 건축 내용은 여지도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1603년 계묘년에 쌍수 산성의 수리가 이루어졌다는 내용과 공북, 진남 양문 건립 내용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래 공북루의 자리는 망북루가 차지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건물 외형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성문의 건축은 협축형태로 조성된 석성이 절단된 후면에 이층의 누각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주를 사용한 이층의 다락집 형태입니다. 공북루는 고창 읍성의 공북루와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백제시절의 누각터, 공산성 임류각지
임류각지는 공산성의 산정에 위치한 광복루에서 서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산의 중턱 서향 사면에 있습니다. 이 건물은 삼국시대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 후, 약 25년이 지난 백제 제24대 동성왕 22년 (493)에 건립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80년에 발견되어 정비된 상태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초석의 배열은 남쪽 열에 6개, 동쪽 열에 7개로 이루어진 정방형 건물입니다.
초석은 방형이나 2~3개의 돌을 합쳐 하나의 초석을 이루고 있으며, 초석의 상면에 요철을 주어 기둥이 밀착되도록 하는 그랭이기법을 사용해 고층 건물을 세웠습니다. 또한 초석 주변에는 굴건식 원형 주공을 만들어 보조 기둥을 사용했습니다. 출토된 유물에는 기와와 함께 단판 8엽의 백제 연화문 와당과 후대의 세판 연화문 와당 등이 있습니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7칸의 이층 누각 건물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공산성의 동문의 터가 있는 곳, 공산성 동문루
공산성 내 동쪽 토성은 공산성 동문이 위치했던 곳으로, 폭 5m 정도의 토성이 절단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1980년에 문지가 조사되어 구체적인 모습이 확인되었는데, 문지의 통로 길이는 6.54m이고 너비는 2.46m입니다. 문지 양쪽에는 원위치한 문지석 2개가 있으며, 자연석으로 쌓은 통로 벽도 원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지석 상면에는 문설주공이 파여 있으며, 바로 안쪽에는 원형 분지공이 있습니다. 서쪽 문지공 바닥에는 마멸 방지를 위해 무쇠 받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건물은 이층 누각 건물로 복원되었으며, 조선시대 성문의 일반적 형식에 따른 건물입니다.
공산성 내 연못, 공산성 만하루와 연지
연지는 공산성 북쪽의 금강과 영은사(靈隱寺)사이에 위치한 연못입니다. 공산성 내에는 우물이 3개 있었다고 전해지나, 이곳과 쌍수정(雙樹亭) 남쪽의 것 2개만 확인되었습니다. 1982년부터 1983년에 걸친 발굴조사로 확인된 것으로, 지형상의 조건을 이용하여 금강 가까이에서 물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연못의 가장자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돌로 층단을 쌓았으며, 수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북쪽과 남쪽에 계단 시설이 있습니다. 연못의 축석은 모두 단을 두어 쌓았으며, 전체적인 모습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입니다. 석재는 정치석은 아니지만 면을 어느 정도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축조는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졌으며, 석질은 절석이 잘도는 반암계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산성 동쪽의 누각, 공산성 광복루
광복루는 공산성의 동쪽 높은 지역에 위치한 누각입니다. 이 곳은 공산성 유일하게 남아있는 겹성인데, 공산성 두 개의 봉우리 중 서쪽에는 쌍수정이, 동쪽에는 광복루가 있어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광복루로 현재 불리는 건물은 원래는 성 내의 중군영의 문루인 해상루였으나, 중군영이 폐쇄되면서 중군영지에 있던 것을 일제 초기에 옮겨 웅심각이라 불렀습니다.
누각은 여러 차례 보수되었으며, 지금의 이름은 1945년 4월에 김구, 이시영이 이 곳에 이르러 누각에 국권회복의 뜻을 기념하는 광복이란 이름을 부여한 것입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지붕 초익공 양식으로, 창방을 각 칸마다 우미량과 함께 깎아내어 장식적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지붕은 홑처마로써 네 귀퉁이를 반전시킴으로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공산성의 서문,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서문지)
문루는 공산성 서쪽 성곽선에 연결되어 성의 입구를 개구식으로 내면서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입니다. 복원된 문루는 출입시설로 사용되지 않고, 공산성 서문의 문지는 출입시설로 사용됩니다. 본래 공산성 서문 문지의 복원은 1975년에 실시되었지만, 누적은 복원되지 않았으며, 1990년에 본래의 문지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3칸 규모의 고주 형태의 문루가 축조되었습니다. 이 문루는 조선시대 성문의 문루 양식을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성백제와 웅진백제의 수도 공주 공산성
한성백제는 삼한 시대를 이루는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나라 중 하나입니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함께 삼국 시대를 이루었고,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백제는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적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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