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사원은 바위 굴을 뚫고 공간을 조성한 사원으로,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조성되었습니다. 원래는 습기와 벌레 등을 피해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불상을 모시고 벽면에 부조나 벽화를 장식하면서 장엄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신성한 공간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큰 마을 부근이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합니다.
건축방식에 따라 천연동굴을 이용한 자연석굴, 바위에 굴을 뚫어 조성한 굴착석굴, 큰 벽돌 형태의 돌을 쌓아 만든 축조석굴이 있습니다. 석굴사원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용문석굴, 운강석굴 등이 조성되었던 남북조시대 중국을 통해 불교와 함께 전래된 것으로 보이며, 초기 불교사원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애석불
마애석불은 7세기 전반 백제에서 시작된 바위에 새긴 불상입니다. 백제의 대표적인 마애석불로는 서산 용현리 마애석불(국보)와 태안 마애석불(국보)가 있습니다. 이 불상은 중국 룽먼석굴로 대표되는 남북조시대 중국 석굴사원의 영향을 받았으며 산동성을 거쳐 백제로 전해졌습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마애석불이 조성되었으며 초기 석굴사원의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여래상(국보)은 백제인들이 가야산 계곡 바위에 조각한 불상으로 여래입상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삼존불은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불,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으로 추정되며, 이는 중국 북조 말기에 볼 수 있는 양식입니다. 가야산 일대는 중국과 뱃길이 있었던 태안반도에서 부여와 공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불상 앞에는 목조건축물을 세운 흔적이 남아 있어 초기 석굴사원 형식을 잘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은 마애불상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습니다. 사각형의 감실안에 보살상이 가운데 있고, 양쪽에 여래상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불상 아래쪽에는 백제시대 연화대좌가 확인되었습니다. 불상의 얼굴은 훼손되었지만 전체적으로 풍부한 양감을 입체감이 돋보이며, 조각수법도 뛰어난 불상입니다.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은 7세기 초에 조성된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사원입니다. 석굴사원은 거대한 자연암석이 ‘ㄷ’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석산은 경주와 청도군을 연결하는 20번 국도가 지나가며, 북쪽편에는 여근곡 전설로 유명한 오봉산 부산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삼국시대 백제군의 침입이 예상되는 주요 교통로였습니다.
석굴 내부 바위에는 10구의 부처와 보살상이 새겨져 있으며, 삼존불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쪽 암벽에는 높이 8.2m의 거대한 주존불상이 새겨져 있으며, 외형상 여래입상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주존불 왼쪽편 암벽에는 여래입상과 반가사유상이 있는 삼존불상이 얕게 새겨져 있습니다. 동쪽벽에는 관음보살, 남쪽벽에는 지장보살을 새겨 놓고 있으며, 남쪽면에는 신선사에 미륵석상 1구와 삼장보살상 2구를 조각하였다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은 팔공산 자락 절벽에 동굴을 만들고 불상을 모신 석굴사원
으로,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대표적인 석굴사원 중 하나입니다. 삼국시대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미타여래를 본존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셨습니다.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의 얼굴은 미소띤 삼국시대 불상과 달리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좌,우의 보살은 당나라 불상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경주 골굴암
경주 골굴암은 삼국시대 선덕왕 때 인도에서 온 승려 광유가 기림사와 함께 창건한 곳으로, 초기 석굴사원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함월산 자락 응회암 절벽에 크고 작은 12개의 석굴에 불전 등을 조성해 놓고 있으며, 마애여래좌상(보물)이 위치한 주불전을 비롯해 약사굴, 관음굴, 지장굴, 산신굴, 나한굴 등 크고 작은 석굴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애여래좌상은 석굴 중 가장 윗부분 바위에 새겨놓은 마애불상으로, 자연석의 석질이 고르지 않이 일부 손상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조각수법이 뛰어나며 입체감이 돋보입니다. 관음굴에는 전실이 마련되어 있어, 바위에 굴을 뚫어 공간을 조성하고 그 앞에 전실을 마련한 우리나라 석굴사원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경주 석굴암
경주 석굴암은 토함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석굴(국보)입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이 불국사와 함께 건립했습니다.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세운 건물로, 석굴 내부에는 본존불을 비롯한 많은 조각상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석굴은 화강암 석재를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석굴을 조성하여 만든 것으로, 석굴사원에 응용한 점에서 독창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앞쪽 전실은 사각형, 본존불이 모셔진 주실은 원형을 하고 있으며, 이는 동양의 천원지방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주실에는 여러 의견이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천부상, 보살상, 나한상이, 전실에는 인왕상과 팔부중상이, 복도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앞쪽 전실 벽면에는 팔부중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복도 입구에는 인왕상이 본존불이 모셔진 주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석굴암 주실 입구 좌.우에는 범천상과 제석천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범천은 고대 인도의 종교인 바라문 교에서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어졌던 최고의 천신으로, 몸에는 승려와 같은 가사를 입은 뒤 장신구를 착용하였습니다. 왼손을 내려 깨끗한 물을 담은 정병을 쥐었고, 오른팔은 굽혀 먼지떨이인 불자를 들고 있습니다.
충주 미륵대원지
충주 미륵대원지는 고려시대 석굴사원으로 추정되며, 석굴암의 석굴을 모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큰 돌을 다듬어 축대와 벽체 등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건축물을 올렸습니다. 내부에는 고려초에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투박한데도 강인한 모습의 석조 여래입상이 모셔져 있으며, 오층 석탑과 석등이 일렬로 나란히 세워져 규모나 격식을 제대로 갖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설악산 계조암 석굴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계조암석굴은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향성사와 함께 건립한 작은 석굴사원입니다. 원래 자장율사, 원효대사, 의상조사 등 고승들이 수행하던 석굴로 여러 조사들이 대를 이어 수행했으며, 설악산의 명소 흔들바위와 같이 있는 곳입니다. 둥글게 보이는 목탁바위 밑 굴속에 암자가 있으며, 천연동굴을 이용한 대표적인 석굴사원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존재했습니다. 내부에는 특별한 유물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북한산 승가사
북한사 사모바위와 승가봉 아래에 위치한 승가사는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해 해발 450m 정도이며 작은 사찰입니다. 경사진 언덕 위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사찰로, 북악산과 인왕산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빼어난 곳에 위치합니다. 승가사는 사찰 규모가 작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당나라 고종 때 생불로 추앙받던 승가대사를 기리는 의미로 이름을 정하였습니다.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건을 하는 등 여러차례 중건을 하였으며 많은 왕들이 이곳 승가사를 다녀갔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승가사에는 석굴에 조성된 약사전이 있어 샘이 흐르고 있으며, 이 샘물이 영험이 있다하여 많은 신도들이 찾고 있습니다.
강화 보문사
강화 보문사는 대표적인 관음성지 중 하나입니다. 신라 선덕왕 때(635년)에 창건되었으며, 바다에서 건져올린 돌덩이를 부처로 석굴에 모시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낙가산 정상 아래에 마애관음보살상이 관음전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문사 석굴은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안에 불상을 모셔 놓은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과 나한상을 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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