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재상이 된 반석평은 노비 출신이었습니다. 반석평은 어렸을 때 시서를 배우며 순수하고 명민한 성격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문과에 급제하고 충청도 관찰사, 공조 판서, 한성부판윤, 형조 판서 등의 벼슬을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밝힌 신분에도 불구하고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 반석평은 이오성에게도 벼슬 자리를 내려주게 됩니다. 그리고 종1품 좌찬성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노비 반석평
조선시대에는 양반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은 양반과 여자 노비에서 태어난 아이는 양반 가문에 입적하지 못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이는 유전자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해지는 특성으로 후손까지 물려받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노비에서 태어난 반석평은 명문 양반 가문의 핏줄을 물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석평의 공부에 대한 열정과 성품
그러나 반석평은 나중에 재상이 되었으며, 조선시대 역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남았습니다. 반석평은 양반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노비 신분으로 참판 댁의 종으로 살게 되었으며, 이는 서당도 못 다니고, 글 공부도 뒷전에서 도둑 공부를 해야 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반석평은 공부에 대한 열의와 열정이 높았습니다. 반석평의 주인은 그의 재능을 인식하고,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반석평을 양자로 주선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반석평은 양반 신분을 얻게 되었으며, 1507년에 조선시대 문무과에 급제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문무과에 급제한 사람들은 하사하던 종이꽃을 머리에 올리고 위풍도를 당당하게 했지만, 교만하지는 않았습니다. 반석평 또한 이와 같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후에 형조판서의 자리에 오른 반석평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자신의 노비 신분을 없애준 주인의 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인 집안은 어느새 몰락하였고, 주인의 아들인 이오성은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반석평은 이오성을 보자마자 수레에서 내려와 절을 했습니다.
조선 제11대 왕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에게 반석평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이오성에게 벼슬을 내려줄 것을 청했습니다. 기특하게 여긴 조정은 반석평의 원래 신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반석평의 지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이오성에게 벼슬자리를 하나 내려주었습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반석평의 관계
노비 신분에서 재상의 자리에 오른 반석평은 후에 조선시대 최고의 행정기관인 의정부에 종 1품 좌찬성까지 오르게 되었으며, 그의 직계 후손이 바로 반기문 UN 사무총장입니다. 이처럼 반석평은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이룰 수 있었던 성취들을 했지만, 노비 출신인 그만의 특별한 열정과 노력 덕분에 그가 이룩한 성과들은 조선시대 역사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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