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건국과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우고 대대로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높은 벼슬을 지낸 집안과 신하들을 '훈구'라고 하며 조선 건국에 반대해 정계를 떠나 지방에서 성리학 연구와 제자를 양성한 이들을 '사림'이라고 합니다.
15세기 후반 제9대 임금 성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사림 세력을 등용하여 훈구세력을 견제하였습니다. 중앙 정계에 진출한 사림파는 개혁 정치를 주장하며 훈구파의 비리를 공격했습니다. 사림파와 훈구파가 대립하면서 사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사화는 훈구파의 정치적 보복으로 사림파 신하와 선비들이 죽거나 유배당한 사건을 말합니다.
조선이 4대 사화
무오사화
1498년 연산군 대 김일손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빗대어 지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것을 빌미로 훈구파가 김일손을 비롯한 사림파 학자들을 죽이거나 귀양을 보낸 사건입니다.
갑자사화
1504년 연산군이 자신의 생모인 윤씨의 폐비와 사약을 받은 사건에 관련된 신하들과 선비들, 성종의 후궁과 그 자손을 죽인 사건입니다.
기묘사화
1519년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 정치에 불만을 품은 훈구 세력이 조광조가 왕이 되려 한다는 음모를 꾸며 조광조와 김정 등 사림파 신진 관리들을 제거한 사건입니다.
을사사화
1545년 명종 때 왕이 계승을 둘러싸고 외척끼리 대립하다 윤원형 일파가 윤임일파를 역모로 다스릴 때 윤임과 뜻을 같이한 사림파가 화를 입은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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