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은 어렸을 때부터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라 불리는 그의 화랑 무리를 이끌었습니다. 화랑에서의 수련과 배움은 김유신에게 수련과 배움의 과정이기도 하였지만, 이 때 맺은 낭도들과의 유대 관계도 장성한 뒤 활동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야 왕족 중 신라로 귀화한 김유신 일족에서는 전공을 세워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유신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정을 받아 신라의 토착 귀족들 틈에서 활로를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김유신의 활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투에서 세운 공로입니다. 629년 34세 때, 신라군이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하여 패배하게 되었을 때, 김유신은 중당당주로 출전하여 혼자의 몸으로 적진에 돌입하여 유린하며 신라군의 사기를 북돋워서 크게 승리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642년 백제의 침공을 막기 위해 김춘추가 고구려에 청병하러 갔을 때, 이에 앞서 김유신은 교섭 과정에서 일어날 위험에 대해 김춘추와 상의하고 서로 목숨을 건 맹세를 했습니다. 당시 김유신과 김춘추는 아직 신라 조정에서 최고의 서열에 들지 못했지만, 이들의 정치적 결속은 보수적인 신라 귀족 사회에서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삼국사기에는 비담의 반란 후 진덕여왕대에 치러진 세차례의 대규모 전투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김유신은 그 전투들에서 최고 지휘관을 맡았습니다. 진덕여왕 1년과 2년의 전투에서는 압량주군주로서 그 일대 전투를 지휘하였으나, 진덕여왕 3년의 전투 당시에는 백제의 대대적 침입을 막기 위해 중앙군으로 편성된 군단을 지휘하였습니다. 당시의 백제 지휘관급 100인과 군졸 8,900여명을 죽이거나 사로잡고 전투용 말 1만필을 노획했다는 전과를 고려했을 때, 신라 쪽에서도 주력 부대를 투입한 대규모 방어군단을 편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휘관 편성을 놓고봐도 대장군에 김유신, 그 아래 장군들에게 진춘, 죽지, 천존 등이 임명되었으며 이들은 당대의 명장들이자 정치적으로도 큰 비중을 가지는 인물들이었습니다.
654년에는 신라군대의 통수부 중심적 위치에 서서 새 왕의 추대에 중요한 구실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덕여왕이 죽자 당시 귀족회의에서는 상대등이었던 알천을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왕에 즉위한 것은 김춘추, 곧 태종무열왕이었습니다. 태종무열왕과는 젊어서부터 친분이 있었고, 누이동생이 태종무열왕의 비였으니 그들의 개인적인 유대는 대단히 깊었습니다. 또한 642년 목숨을 걸었던 맹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정치적으로도 밀착이 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김유신이 태종무열왕의 즉위에 간여함은 열전에 나타나 있습니다. 김유신전에는 그가 알천과 상의해 태종무열왕을 즉위시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종무열왕이 왕위에 오른 이후 김유신은 정치적인 위상을 한층 높였습니다. 신라 본기 시기에는 태종무열왕이 즉위한 다음 해에 그의 관직이 대각간에도 나타났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태종무열왕의 셋째 딸인 지소와 결혼하였습니다. 이는 김유신과 태종무열왕 간의 결속이 더욱 강해졌음을 보여주며, 종전과는 달리 김유신이 가야계 출신이라는 제약을 벗어나 왕실과도 통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유신은 스스로를 엄격히 단속하며, 신라 다중의 결속과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연속되는 출정 중에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 앞을 돌아보지 않고 지나치거나, 추위가 매우 심한 날에도 군사들과 함께 행군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에 대한 군사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또한, 김유신은 아들인 원술이 당나라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망쳐오자 왕에게 참수형에 처해지도록 건의하면서도, 자신의 책임에 대해 언제나 엄격하게 대처했습니다. 김유신이 죽은 후에는 왕이 성대한 의식을 갖추어 그를 금산원에 장사하고, 비를 세워 그의 공적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흥덕왕은 김유신을 추봉하여 흥무대왕으로 지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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