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국영은 정조 지켜낸 1등 공신입니다. 홍낙춘의 아들로 풍산 홍씨 가문에 속한 그는 눈치가 빠르고 일처리를 잘하며, 영조로부터도 신임을 받아 1771년 관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세자시강원 설서에 임명된 이후, 홍국영은 정조와 친해져 세손의 심복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후 역모와 괘서 사건, 자객 침입 사건 등이 일어나면 홍국영은 경호실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고, 정조의 외척이 되려고 하던 시기에는 사직 상소를 올려 물러났습니다. 홍국영은 군사권을 쥐어주는 등 권세를 넓혀나갔습니다.
홍국영의 공적
홍국영은 조선시대에 정조를 지켜내며 1등 공신으로 떠오른 인물입니다. 그는 승문원 부정자를 거쳐 세자시강원 설서에 임명되어 세손인 정조와 친해져 경호원으로 일했습니다. 그의 승진 속도는 매우 빨랐습니다. 1771년 과거에 급제한 후 관직에 순탄히 오를 수 있었고, 승문원 부정자를 거쳐 세자시강원 설서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 세손 정조와 홍국영은 곧 친한 벗 사이가 되었습니다. 마음도 잘 맞았고 무엇보다도 홍국영이 세손의 심복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손의 충실한 심복이자 경호원으로서 일했습니다. 홍국영은 역모 사건에서 자객 추적 등 경호실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역모 사건 이후에는 괘서 사건, 자객 침입 사건 등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홍국영은 이때에도 자객을 추적해 체포하거나 사건 조사를 맡는 등 경호실장으로서의 임무를 계속했습니다. 이 시기에 역모를 모의한 이들이 거의 모두 정조와 홍국영을 최우선 타겟으로 삼은 것을 보면 그 활동 범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조가 홍인한, 정후겸, 김귀주 등의 척신들을 숙청해 나갈 때 그를 도와 척신 제거의 선두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홍국영은 정조를 지키며 막강한 권력을 획득하였습니다. 정조는 홍국영을 자신의 날개, '나라를 지킨 단 하나의 인물' 등으로 칭하며 그 공적을 높이 샀습니다. 그는 동부승지를 거쳐 겨우 서른 살의 나이에 군사권을 쥐여주고, 궁중 재정 문제에도 관여하였습니다. 하지만 권력에 눈이 멀어 홍국영은 척신들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고, 대비 정순왕후가 새 후궁을 간택하면서 홍국영은 외척이 되어 더 큰 권세를 누리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홍국영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경계하였고 대화를 나눈 뒤 홍국영은 사직을 했습니다.
홍국영의 권력 확장
홍국영은 조정 내에서 최고의 권신이었던 인물로, 권력이 점점 확장되었습니다. 그는 척신 반대에서 김종수와 손을 잡았고, 송덕상과도 제휴하였습니다. 그의 권세가 어찌나 높았는지 정후겸의 전횡을 능가한다며 '대후겸'이라는 칭호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홍국영은 원빈 홍씨가 새 후궁으로 간택되면서 더 큰 권세를 누리기 위해 계획을 세웠지만, 그 계획은 실패하였습니다.
이후에는 홍국영의 권력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며, 정조는 홍국영을 사직시키고 권력을 제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홍국영이 사직하자 환심을 사려는 신하들이 홍국영의 복귀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에 분노한 정조는 홍낙순을 파직시키고 서명선을 탄핵하는 대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부분의 신하들은 정치적 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후 김종수는 정조의 뜻을 알아차리고 홍국영의 횡포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홍국영의 위세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는데, 원빈 홍씨의 장례식이 왕의 장례식에 버금갈 정도였고, 대리청정의 서명선을 비호하는 것으로 인해 탄핵당한 것입니다. 이후 정조는 홍국영의 권력을 제한하였습니다.
홍국영의 복귀와 유배
홍국영이 사직하자 환심을 사려는 신하들이 홍국영의 복귀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에 분노한 정조는 홍낙순을 파직시키고 서명선을 탄핵하는 대응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부분의 신하들은 정치적 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후 김종수는 정조의 뜻을 알아차리고 홍국영의 횡포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홍국영의 사직 이후, 그는 다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홍국영의 권력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홍국영의 권력 차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였습니다. 이에 정조는 홍국영을 다시 사직시켰습니다.
강릉에 유배를 간 홍국여은 높았던 권세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충격을 받았습니다. 야사에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정신병이 있는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사형을 내린다고 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세손시절부터 정조를 보좌했던 1등 공신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더 큰 권력을 탐하다 몰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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