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두 번째 왕비 후보로 선발된 그녀는 15세였으며, 66세인 영조와의 나이차는 55세였습니다. 그녀는 현명하게 처신하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권세도 나날이 높아졌습니다. 정순왕후는 궁중의 정치력을 키워나가며 영조의 결단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은언군과 그의 자식들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 등, 정순왕후의 정치력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왕실을 보전해야 한다는 명분을 쥐고 행동했습니다.
정순왕후의 어린 시절과 왕비로 책봉되기까지
정순왕후는 1745년에 김씨 일가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주 김씨 일가로, 권세가 높았습니다. 정순왕후는 김한구의 딸이자 김귀주(1740~1786)의 여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1757년 영조의 첫 번째 왕비인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759년, 정순왕후가 영조의 두 번째 왕비 후보로 간택되었습니다.
이때, 야사에서는 정순왕후가 아버지의 이름이 쓰인 방석에 앉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는 등 총명한 행동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경주 김씨 일가의 권세 덕분인지, 아니면 그녀 자신의 총명함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영조의 총애를 얻어 왕비로 책봉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정순왕후의 나이는 15세였고, 66세인 영조와 무려 55세 차이가 나는 손녀뻘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궁궐에 들어와서 자신도 궁궐에 유폐된 장렬왕후와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순왕후는 친정 사람들을 등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영조에게 말하는 등 현명한 처신을 했습니다.
그 처신 덕에 영조의 총애를 얻었고, 김씨 일가의 권세도 나날이 높아져갔습니다. 사도세자의 뒤주 갇힘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일각에서는 정순왕후가 노론 세력을 지휘하며 사도세자 제거에 앞장섰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18살에 불과했고, 왕비가 되었을 때는 이미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갈등이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태였습니다.
궁중의 법도상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그녀가 세자를 죽여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노론의 수장인 그녀가 소론에 우호적인 세자를 제거하려 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명색이 대리청정이지 실권은 거의 없던 세자가 소론에 우호적인 행적을 보일 수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정순왕후의 세력 확장과 세손 대리청정 지지
정순왕후 일가친척들이 조정에 대거 등용되면서, 김씨 일가의 권세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홍봉한과의 대립으로 인해 정순왕후 일가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홍봉한은 세손인 정조의 보호자로, 그의 실권자이기도 했습니다. 홍씨 일가는 세손이 척신들에 대한 경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자 이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자객들까지 동원하며 노력했으나, 세손이 대리청정 후 왕위에 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세손은 홍봉한이 자신의 요구를 수락하라고 협박했다는 사실을 정순왕후에게 찾아와 고하는 등 정순왕후를 사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김귀주와 홍봉한, 남당과 북당의 대립에 대해서는 이미 수 차례 다루었기에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두 세력 모두 큰 타격을 입고 그 자리를 홍인한과 정후겸이 차지했습니다.
정순왕후의 정치력
정조가 그녀에게는 김귀주의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별다른 해를 가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왕위에 오른 것은 오직 자전(정순왕후)의 덕이었다며 추켜세웠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순왕후는 이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지 않고 '왕실의 큰어른'으로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왕실을 보전해야 한다는 명분을 쥐고 행동했습니다. 정조가 오래도록 후사가 없자 새 후궁을 간택하라는 명을 내리거나(다만 이 경우에는 홍국영이 자신의 누이 원빈을 간택시키는 것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은언군 역모를 찾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등 백성들의 인식 변화로 인한 정조에 대한 반대를 뚫고, 정조의 결단 명분을 잡고 뛰어난 정보력 하에 정국을 조종한 그녀의 정치력이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누이 정순왕후로 인해 새로운 세력이 된 김귀주
김귀주(1740~1786)는 김한구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글실력이 뛰어나 충청도 일대에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아버지 김한구와 함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1759년에 영조의 왕비로 간택된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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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를 지킨 1등 공신 경호실장 홍국영
홍국영은 정조 지켜낸 1등 공신입니다. 홍낙춘의 아들로 풍산 홍씨 가문에 속한 그는 눈치가 빠르고 일처리를 잘하며, 영조로부터도 신임을 받아 1771년 관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세자시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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