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순은 조선후기 세도정치를 연구하여 실천했던 인물입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라는 뜻의 세도(世道)였던 세도 정치는 조선 말기에는 척신이나 총애를 받는 신하들이 권세를 휘두르는 세도(勢道)로 변질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척신이나 외척들이 권력을 농단한 조선 말기의 정치를 세도 정치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도 정치는 명문가들과 권력층 사이의 경쟁과 갈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조선시대 정치의 주역 김조순
김조순(金祖淳)은 조선 최고의 명문가인 안동 김씨 출신으로, 조선시대 정치의 주역 중 한 사람입니다. 안동 김씨는 크게 두 집안으로 나뉘는데, 김자점의 몰락과 함께 멸문지화를 당한 집안과 이들과 혈연관계가 거의 없는 집안이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한양 장의동에 뿌리를 두었기에 장동 김씨라고도 불립니다.
김조순은 안동 김씨 후손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을 뿐더러 정조의 정책을 지지하는 시파의 입장을 띄고 있었습니다. 정조 연간에 벽파와 시파의 싸움을 멈추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고 벽파, 남인, 소론 모두에게 유들유들한 처신으로 대했습니다. 또한, 김조순은 정조의 후견인으로 활약하였습니다.
정조의 후견인
정조는 중년의 나이에 머리가 벌써 세거나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썼고 각종 종기로 고통받았습니다. 왕은 이제 10살 남짓한 세자를 두고 죽게 될까 봐 초조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세자에게 든든한 후견인이 주어져야 한다고 여겼고, 그 적임자로 김조순이 선택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김조순은 정조와 세자와의 관계를 맺기 위해 김조순의 딸을 세자의 아내로 추천하였습니다.
벽파 세력 숙청
순조는 새로운 세력을 등용하고자 했습니다. 김조순, 김이영, 김이교, 김희순 등 안동 김씨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이들은 왕의 뜻에 충실히 응답해 벽파 세력을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벽파 숙청 과정에서는 김관주의 아버지 김한록이 정조의 정권에서 몰락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김조순 등 안동 김씨들은 권력의 중추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순조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안동 김씨들의 권력은 무너졌습니다. 이후 김조순과 김이영 등의 안동 김씨들은 바로 노론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이인수와 함께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세도 정치의 변천사
세도 정치는 조선시대 전반적으로 많은 변천을 겪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순조가 등용한 안동 김씨들은 척신과 외척들이 권력을 농단한 조선 말기의 정치를 세도 정치라고 불리게 된 시기에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후 김조순 등 안동 김씨들은 왕권을 지지하는 노론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으나, 이인수 등의 노론파와의 갈등으로 인해 권력에서 떨어졌습니다.
세도 정치의 변천사는 조선시대의 정치사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철학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변화와 상호작용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안동 김씨들과 같은 명문가들은 조선시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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