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입니다. 그러나, 고조선 내에서 기록한 자료는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기록도 매우 부족합니다. 또한, 고조선 시대의 상세한 모습과 삶의 형태 등을 알기 어렵습니다.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라는 명분은 있지만, 그 자료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알 수 있는 기록과 유물을 통해 고조선 백성들의 생활양식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족 연합체 고조선
7세기경, 고조선은 하나의 통일 국가보다는 여러 부족들의 연합체 정도로 생각되며, 중국 측 기록에서는 '발조선' ,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됩니다. 이 시기의 문헌에 따르면 고조선 사람들은 사슴과 같이 빨리 달리고 사냥에 능했는데, 아마 부여나 고구려와 같은 짐승들을 주로 사냥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이 시기의 고조선인들은 중국과 교역하면서 사슴 가죽이나 옷을 팔았으며, 간간이 국제 정세에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조선에서는 왕을 칭하고 '대부', '상'과 같은 관직명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철기가 도래하면서 청동과 구별되어 농사와 군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한반도를 노리는 강력한 국가들이 연이어 나타나면서 고조선인들은 이들과 교역을 하면서 부를 쌓았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명도전을 비롯한 중국 왕조의 화폐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이처럼 고조선 사람들은 중국 기록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면서 물품을 교역했으며 청동기에서 철기 사용으로 바뀌면서 나라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종교와 제사의식
고조선에서는 종교와 제사 의식이 있었는데, 청동 거울과 방울들이 여러 개 발견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원래 왕이 이 역할을 맡았으나 나중에는 두 지도자가 서로 분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략》에 따르면, 고조선 사람들은 후에 동예의 행사가 되기도 하는 무천을 10월에 열었으며, '우제점'이라는 소의 발굽으로 점을 치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고조선인들이 어떤 풍습을 가졌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법과 제도 팔조금법
또한, 종교와 함께 법과 제도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유명한 팔조금법이 그것인데, 8개의 조항 중 현재 전해지는 3개의 조항을 통해 고조선에 사유 재산과 사형 제도, 그리고 화폐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고조선 사람들은 요리에 시루와 같은 기구를 사용하였으며, 발전된 집에서 거주했습니다. 또한, 중국의 복식과 판이하게 구별되는 의복을 입고 상투를 틀며 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우리가 아는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음악을 즐긴 고조선
위만이 고조선에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준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조선 사람들이 하는 상투를 틀고 그들의 차림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고조선에서는 음악도 즐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인 <공무도하가>가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조선의 군사들이 입은 갑옷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뼈로 만든 갑옷이 유물로 전해졌습니다. 함경북도 호곡 유적과 서포항 유적에서 뼈로 만든 갑옷이 발견되었는데, 완전히 만든 판갑옷이 아니라 하나하나 만들어 끈 등으로 연결하는 찰갑옷의 형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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