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한반도 남부 지역에 위치한 고대 국가 중 하나입니다. 57년에 신라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이 지역에서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백제와 고구려에 대한 신라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 지역의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추대해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게 되었고, 이를 신라라 불렀습니다.
신라는 삼국시대에는 다른 나라들과 동등한 지위에 있었으나, 통일신라 시대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되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불교가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로 많은 문화재와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신라의 도읍이 서라벌
서라벌은 신라의 도읍으로, 현재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합니다. 신라가 건국된 이래로 한 번도 도읍을 옮긴 적이 없어서 천년 왕국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서라벌은 형산강이 흘러 땅이 비옥하고, 산으로 둘러싸여 외침을 피하기 좋았기에 도읍으로는 과연 적격인 곳이었습니다.
서라벌은 사람이 많아지고 짜임새가 발전하며 8세기경에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전체를 36개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구성한 뒤 한 정사각형을 다시 16개의 구역으로 나누는 등, 계획도시적인 모습도 갖추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인구가 17만~4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융성한 대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신라의 궁성 경주 월성
경주 월성은 신라 왕조 시대에 세워진 궁궐로, 초승달 모양으로 지어져 신라 시대부터 신월성 또는 월성으로 불렸습니다. 101년(파사 이사금 22)에 지어졌으며 월성은 둘레가 1,023보에 성벽은 흙과 돌을 혼용해 쌓았으며 반달 모양으로 지어졌습니다. 현재는 약 50~70m의 폭을 가진 성벽이 둘레 약 1,800m 규모로 잘 남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왕성 중 존속 기간이 800년이 넘는 곳은 신라 월성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월성은 건물이 모두 사라져 있는 상태입니다. 경주 월성은 신라에서 가장 오래 쓰이고 가장 많이 쓰인 궁성입니다. 경주 월성은 신라의 왕이 기거하던 궁궐의 터로, 신라의 중심지인 서라벌에서도 가깝게 위치하고 있습니다. 경주 월성은 신라의 문화재 중 하나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해 볼 만한 명소입니다.
최초의 궁성 금성
박혁거세는 21년 초기왕궁의 개념으로 새로운 성을 세우기로 했으며 경주에 위치한 궁궐인 금성이 건립되었습니다.금성은 신라 중기까지 간헐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나중에는 월성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최초의 궁성인 금성은 현재까지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기타 궁궐들
금성 외에도 명활산성, 북궁, 남궁 등 다른 궁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명활산성은 자비 마립간 치세에 임시로 옮긴 적이 있던 것으로, 지금은 유적만 남아있습니다. 북궁은 진성여왕이 죽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별궁이고, 남궁은 유물로만 실체가 밝혀진 것입니다. 신라의 궁궐들은 당시에는 아름답고 규모가 큰 건물들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터만 남아있습니다. 이 궁궐들은 고대 신라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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